고통이 나에게 준 것
아마추어로 살다가 아마추어로 끝낼 걸.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하다 갈 거야.
20대에 그렇게 말했다.
수채화에 열정을 쏟다가 23년 가을부터 여러 안질환이 와서 그림을 놓았다.
그중 각막미란은 언제, 어떤 이유로 재발할지 모르는 폭탄 같았고, 고통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수채화 도구를 보면 화가 났고, 어반 모임에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말을 하기 싫어서 사람들을 피했다.
NA-BE팀 사람들에게 그만두겠다 말하려 했던 날, 종이 얘기를 하다 보니 꽉 닫혔던 입이 열렸다.
며칠 뒤, 몇 달 만에 크로키 하면서 큰 붓을 잡고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그렸다. 다른 결과가 나와서 신기했다. “그려도 되는 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 날 모델이 베테랑 황채복씨다.
예전에는 연한 색들이 서로 부딪히며 ’딩, 동땡, 핏, 댕동‘ 같은 미묘한 어울림을 좋아했다.
이젠 그런 연약한 색이 안 보인다. 그러니 진하게 그린다. 색조와 명도에 둔해졌다. 도구가 커지고, 서서 그린다. 선이 굵어지고 큰 붓을 쓰게 됐다. 안 들어맞아도 그러려니 한다. 나는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2년간 손 놓았던 수채화들을 다시 보았다. 언젠가 다시 하더라도 예전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를 바란다.
그간 나는 결과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아마추어라고 고집했었다. 이제 애매했던 선을 넘어섰다.
어디로 가게 될 지는 모르지만, 경험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기를 바란다.
-2025.10. 개인전 후